10.08. 주일설교 내가 믿었나, 그가 나로 믿게 했나? > 설교모음 Sermons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설교모음 Sermons

10.08. 주일설교 내가 믿었나, 그가 나로 믿게 했나?

페이지 정보

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0-08 12:04 조회 Read325회 댓글 Reply1건

본문



ㅇ 제 목: 내가 믿었나, 그가 나로 믿게 했나? Did I believe or did He make me believe?
ㅇ 설교자 : 이 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사도행전 9:1-22

사도행전 9:1-22 (개역개정)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빌립보서 3:5-6 (개역개정)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도행전 22:3-5 (개역개정)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예레미야 10:3-5 (개역개정)

10:3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로마서 8:29-30 (개역개정)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5:8 (개역개정)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5:16 (개역개정)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3년 10월 8일  사도행전 9:1-22  “내가 믿었나, 그가 나로 믿게 하셨나?”

오늘은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과연 우리들 자신의 믿음은 어떤 것인가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설교제목에 나타난 바와 같이 내가 믿었나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믿게 하셨나? 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믿었다면 나의 선택이므로 내가 좋으면 계속 가지고 있고 싫어지면 버릴 수 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는가 물으면  “내가 예수님을 십년 믿었는데 이제는 않 믿는다.”고 하거나, 또는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믿었는데 커서는 안 믿는다.”고도 하지요.
*반면에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믿게 하셨다면 내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믿어졌으므로 안 믿으려고 의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안 믿어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여러분이 선택해서 믿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믿도록 하셨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하나님을 분명히 믿지 않는 분들은 오늘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신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과 같은 지파인 베냐민지파 사람인데 아마도 사울 왕과 같은 큰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이름을 지은 듯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을 믿고나서는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꿨는데 그 뜻은 “작은 자”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울은 예수님 믿기 전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 믿은 후의 이름입니다.
• 사울의 믿음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왜 이렇게 살기 등등한가?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5-6)
그 뿐 아니라 사울은 극단적인 행동주의자이었었다고 고백합니다.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행 22:3-5)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때에 그는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핍박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죄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서 옥에 쳐 넣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보다도 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보기 드믈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곧 “내가 믿는다.”는 신념 수준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사울의 신앙을 칭찬했습니다. 특히 당시 유대인 사회의 주도 세력이었던 대제사장들이 그의 믿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서 압송하라는 공문서 발행해 줄 정도입니다. 그의 열심은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세 300킬로 넘는 거리에 있는 다마스커스까지 가는 정도입니다. 
미신을 한마디로 하자면 “내가 믿는 것” 입니다. 나를 위하여 내가 선택해서 믿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곳에 있는 소위 토속종교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의 토속종교, 중국에 있는 수만은 도교의 대상, 성경에 있는 바알, 아세라, 시돈 사람의 아스다롯, 암몬 사람의 밀곰, 모압 사람의 그모스, 이사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든 금송아지 등등 모든 것이 다 인간이 만든 우상이다.
3.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4.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5.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렘 10:3-5)
이상에서 열거한 우상들 외에도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내가 믿는 것” 입니다. 우상숭배이며 인본주의적인 종교, 신념, 철학, 관습일 뿐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복, 내가 기대하는 삶의 내용, 내가 원하는 출세, 성취, …..
흥부는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쳐주는 착한 일을 해서 그 결과 부자되고 출세하고 떵떵거리고 살았다지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거지에게 밥을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 좋은 일과 선행을 많이 베풀면 흥부의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이것이 미신입니다.
바로 어제부터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상태로 인하여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알카에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레바논의 헤즈볼라, 탈레반, 등등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종교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는 확신범들입니다. 모두 다 “내가 믿는다.” 입니다.   
사울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확신을 위하여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는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의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을 핍박하는 것이며, 심지어 죽이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비슷한 행태를 보입니다. 아무도 막을 사수 없을 것 같은 그의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체가 허약한 것인지 살펴 봅니다.
• 바울의 믿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확신에 찬 행동주의자가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중에 하늘로서 소리가 들렸다고 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그리고는 사울이라는 청년은 소경이 되어 암흑 속에서 식음을 전페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졸지에 어둠의 세계에 갇혀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기도했을까요?
내가 이토록 연약한 존재인가?
과연 예수라는 그 사람,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일까?
사울의 신념으로 볼 때 자기를 박해하는 자는 원수이며, 원수는 무찔러야하거늘….
예수라는 분은 왜 자기를 박해하는 나를 부르는 것일까?
깊은 어두움 가운데서 사울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주장할 것이 많고 반박할 것도 많고....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깜깜한 암흑 가운데서 사울은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를 만납니다.
그 때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와서 성령님의 뜻을 전해주며 기도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그리고 주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셨다고 말하며 복음을 자세히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침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울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었나요? 예수님께서 그를 믿게 하셨나요? 그는 자신이 결코 예수라는 사람과 그 가르침을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박해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앙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더욱 살기 등등하게 날 뛰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믿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박해하였지만 예수님은 사울에게 뜻을 두시고 기다리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예수님이 믿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의 인생이 즉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하나님께서 바울을 미리 아신 것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들, 오늘 이 예배에 모인 저와 여러분들을 미리 아시고 그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려고 미리 부르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요 3:15)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구원해 달라고 애원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아시고 아들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찾아오셔서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것이 온 인류의 죄와 그 곳에 있는 저와 여러분의 죄의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어서 된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향하여 사랑을 베푸셨으므로 우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 자신도 1972년 10월 30일까지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에 나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믿어지고, 그 결과 하나님께 인생을 드리고 싶어지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믿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내 인생을 기쁨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의지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믿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는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자기들이 믿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믿게 하셨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목숨을 내놓고 순교했습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선택해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먼저 아시고 나를 찾아오셔셔 말씀으로 내게 감동주심으로 나로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인생은 예수님 중심의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에 참여하는 삶의 표현입니다.    구제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덕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로서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나를 위하여 핍픽을 받으면 즐거워하라 하늘의 상금이 크기 때문입니다. 누가 핍박을 받는가? 구원 받기 위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이기 때문에 즐겁게 핍박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사울을 먼저 아시고 택하신 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살기등등 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믿고 맡길 분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뿐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교회소개 About Church 개인정보취급방침 Privacy Statement 서비스이용약관 Terms of Service Copyright © jiguchonchurch.org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o top

Southern Baptist Convention Arizona Global Baptist Church
536 E. Fillmore St., Tempe, AZ 85288 / T. (48O) 442-732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Mobile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