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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주일설교 달리다굼 I say to you, ge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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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손종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10-01 10:58 조회 Read190회 댓글 Reply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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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제 목: 달리다굼 I say to you, get up!
ㅇ 설교자 : 이 아브라함 목사
ㅇ 본 문: 마가복음 5:21-24, 35-43

마가복음 5:21-24 (개역개정)

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마가복음 5:35-43 (개역개정)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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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2023년 10월 1일 (주)    마가복음 5:21-24,35-43    “달리다굼” (Little girl, get up!”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천년에 걸쳐서 서로 다른 사람이 기록했지만 그 내용을 알려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구슬을 연결되듯 한꾸러미 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크게 나누어 보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 후손 중에서 선지자들을 세우신 후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기록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구약성경입니다. 거기에는 모세5경, 역사서, 시문학, 예언서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친히 말씀하시고 행하신 기적들을 기록한 복음서, 그리고 예수님 대신에 오신 성령님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과 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서신서, 그리고 마지막이 계시록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 내용의 시대적 변화를 집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의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미신처럼 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우선 전제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를 반복합니다만 하나님은 한번 하시면 영원히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십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땅에 죄악이 만연했을 때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셔서 다 쓸어 버리셨으나 노아 여덟 식구를 통해서 처음 만드신 사람을 계속 유지 번성케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죄로 망가졌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만드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애굼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10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들이 광야 40년을 지날 때 어떤 기적들이 일어 났나요? 홍해가 갈라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를 비처럼 내려주시고, 사막의 돌에서 온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오고, 땅이 갈라져서 사람들이 죽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자들에게 불이 내려서 태워 죽이는가하면 독사가 나와서 백성을 다 물어 죽이고 등등…  그런데 그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는 만나가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는 성전이라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내가 성전이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어버려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오늘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문둥이가 즉시 깨끗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안질뱅이가 뛰어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보리빵 다섯과 생선 두마리로 2만명을 동시에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보내신 이후에는 교회가 성전이라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3:16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초기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가 했더니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서신서에 이르면 거의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직 이 세상에 사람으로 계실 때 이루신 기적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생각해 봅니다.
 
1.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23)
회당장 야이로 라는 사람은 유대교인들이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하던 장소의 지도자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목사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예수라는 청년에게 내 딸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주십시요 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예수님은 출신도, 성분도 불분명하여 논란거리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서 어떤 면에서는 미치광이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 라는 사람은 예수라는 청년이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고쳐주십사 고 체면 불구하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저주받은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숨기고 싶은 일입니다. 더구나 회당장의 체면으로는 숨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딸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딸의 문제를 인정하고 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님이 “우리 아들이 마약중독에 걸렸다던가, 또는 교회에서 믿음 좋은 것으로 알려진 안수집사님의 딸이 바람이 나서 가출했습니다. 라는 것보다도 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숨기고 묻어둠으로서 더욱 심각한 지경으로 이르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이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라고 체면도 자존심도 버리고 고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큰 무리 앞에서는 더군다나 어렵습니다. 이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딸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버렸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상황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 믿
      음으로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이고 믿음의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는 “병든 것” 입니다. 영적, 육적, 정신적, 사회적, 사상적, 이념적, 문화적…. 모든 면에서 이미 깊이 병든 시대 가운데 우리 자신들과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 병든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 시대의 병에 전염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동안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의 전염성을 경험한바 있습니다.
 
무차별로 넘쳐나는 성문화, 마약, 앨콜, 도박은 이미 들어난 것이고, 상실된  인간의 절대가치, 오도되는 문명의 가치, 붕괴되는 가정, 이미 붕괴되었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숨기고 가정이라는 지붕에 함께 사는 원수들, 돈 중심의 인생관으로 이미 메말라 버린 멍들어 버린 어린 마음들, 세계 도처에서 이념과 사상과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계속되는 살육의 일상화, 지난 2년 가까이 계속 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매일 같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화 보듯이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
모든 관계성의 단절, 대립과 원수감정 .교회의 타락, 신앙의 형식화, ....영적, 정신적, 육적으로 병든 이시대의 문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 자녀들이 이미 깊은 중병에 걸려있는 것은 아닌지 정직하게 살펴보고 “내 딸이, 내 아들이 죽을 병에 걸렸나이다.” 라고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심각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위해서 예수님 앞에 탄원하고 있습니까?

많은 인생들이 정신적, 영적으로, 병들었고 그 영혼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결코 예외 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지옥을 향해서 줄지어 가는 산 것 같으나 죽은 목숨입니다.
-내 딸, 내 아들이 죽게 되었나이다.
-아니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천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나무숲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죄성이 우리에게 유전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죽으면 지옥 갈 것이 분명한 죄인입니다.고백하기를 기다리십니다. 

2.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그의 딸이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가봐야 헛수고입니다. 공연한 발걸음하지 마십시요“라고 전합니다. 이제 모든 것은 끝장입니다. 죽음이 곧 인간의 한계입니다. 죽음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던 모든 꿈과 계획과 감정과 관계성은 모두 끝나는 것입니다.

죽음, 그리고 그 엄격한 실존,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죽음의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죽음에 둘러 쌓여서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고 그 허무한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뭔가 이루어 보려고 헛된 발버둥을 치며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며, 굳이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모든 것은 끝났는데, 그의 딸은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당신을 믿고 간구하는 야이로를 도리어 격려하셨습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내가 책임지마.”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 아니겠습니까?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에서, 불가능의 상황에서 울리는 예수님의 말씀의 약속,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님은 그 딸의 죽음을 약속대로 책임지셨습니다. 살려주셨습니다.

• 달리다 굼(소녀야, 일어나라.)
달리다 쿰 소녀야 일어나라. 이 말은 예수님 당시에 어머니들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의 아침잠은 여러분이 깨운다치고,
그들의 죽은 잠에서는 어떻게 깨우시겠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그들을 죽음의 깊은 잠에서 깨우실 수 있습니다.

죽음의 잠을 자는 소녀를 깨우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 병든 자, 죽은 자의 심령을 깨우시는 성령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얘야, 일어나라.

꿈이 병들어 죽은, 비전으로 죽은, 정신적으로 죽어버린, 영적으로 죽어버린, 마약으로 성으로 도박으로 game으로 죽어버린 영혼에게 달리다굼 하십니다.

주님은 영적으로 죽음의 잠에 빠진 영혼들에게, 달리다굼하고 외치십니다.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 끝장난 인생들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깨우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영광의 새아침을 맞이하라고 말입니다.

아담의 죄 이후로 모든 인생은 죽음의 포로입니다. 
일생 죽음에 매야 종 노릇하는 것이 인생의 실존입니다. 

죽음의 권능을 이길 수도 없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옵니다.
내 죽음의 시간을 결코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음 이후에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 예수님을 지금, 오늘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인생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의 야이로 처럼 딸의 생명을 맡겨야 합니다.
-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됩니다.
-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됩니다.
- 그러나 죽음은 지금 대비는 해야 합니다.
한번 죽으면 그만, 기회는 영원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쿰“이란 말은 아람어로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깨우시고 사명을 주실 때 부르시는 말입니다. 엘리사, 요나, 예레미야, 이사야, 등등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깨우시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그는 곧 일어나 모든 삶을 정리하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만일 아브람이 일어나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자연인인 상태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어나라" 라는 말씀은 현재의 상태를 박차고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하라. 그런 뜻입니다.
군대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일어섯,” 하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뛰어 일어나야만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인류의 죄를 모두 대신 갚아 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 세상의 목숨이 끝난 후에 올 영원한 세상을 우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거룩한 영, 곧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엎드려 고백하고 간구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에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계실 때에는 사람의 몸의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문둥이가 순간적으로 깨끗하게 되고, 나면서부터 소경이 눈을 뜨게 되고,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신이 내어 쫓기고, ... 예수님께서 touch 하시는 즉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기적은 앞으로 성령님이 오실 때  인간의 영혼이 그렇게 고침을 받을 것을 실물 교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의 질병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고쳐지는 기적이 일어났듯, 오늘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1:12-13)
영혼이 문둥병자 같던 죄인이 깨끗이 용서 받고, 영적인 귀머거리가 복음을 듣고, 영적인 소경이 눈을 떠서 영적인 역사를 보고, 영적인 중풍병자가 일어나 사역에 투신하고...

달리다굼!
주님,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
사랑하는 내 자녀들이, 부모가, 배우자가, 친구가, 이웃이 죽게 되었나이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영적으로 죽은 자가 영원히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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