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자에 대한 가르침 Who Is the Greatest? (누가복음 22: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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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4-12 23:58 조회 Read6,288회 댓글 Reply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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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2017
가장 큰자에 대한 가르침 Who Is the Greatest? (누가복음 22:24-27)
예수님께서 금요일 날 오전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날인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듭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만찬을 들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 13:1-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지 않으셔도 되었지만, 하인들이 할 일을 행하시므로 제자들을 섬기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며 섬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예수님의 실습 교훈이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섬김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고, 불과 얼마전에도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요 종이 되는 사람이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셨고, 본인 자신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오셨음을 밝히셨습니다. (마 20:25-28)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전에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2:15) 그리고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2:19-20) 예수님을 따르기전에 침례요한을 따랐었던 제자들 만이라도,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던 외침을 기억 못했을까? (요 1:29, 36) 그리고 이미 예수님께서 여러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고하셨다면, 이 빵과 잔을 들면서 그들을 위해 드리는 몽이며 그들을 위해 피를 언급하셨을 때,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제자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가진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자 마자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눅 22:24) 여러번에 걸친 섬김에 관한 교훈도, 그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실문적인 교육도, 심지어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사실에 대한 예고에도 그들의 주 관심은 누가 더 큰 사람으로 여겨질 것인 가에 있었습니다.
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 드는 사람이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나는 시중드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도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고 지금도 계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자리에서도 섬김에 대해서 이토록 강조하신 것은 그만큼 섬김이 중요한 문제요 그 반면 섬김을 받으려는 우리 자신의 본성과 세상의 영향력이 그토록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교회도 예수님의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따르기 보다 오히려 세상의 모습을 따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섬기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혹시 내 심정 속에 상대방을 섬기려는 마음보다는 그를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는 않습니까? 대접받지 못한 것으로 원통해 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내가 자신 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겨야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령님은 섬기시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빌 2::5; 갈 5:22-23).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가장 큰자에 대한 가르침 Who Is the Greatest? (누가복음 22:24-27)
예수님께서 금요일 날 오전에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날인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듭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만찬을 들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요 13:1-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지 않으셔도 되었지만, 하인들이 할 일을 행하시므로 제자들을 섬기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며 섬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예수님의 실습 교훈이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겸손과 섬김에 대해서 여러번 말씀하셨고, 불과 얼마전에도 섬기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요 종이 되는 사람이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셨고, 본인 자신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오셨음을 밝히셨습니다. (마 20:25-28)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전에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참으로 간절히 바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22:15) 그리고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너희를 위해서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2:19-20) 예수님을 따르기전에 침례요한을 따랐었던 제자들 만이라도,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던 외침을 기억 못했을까? (요 1:29, 36) 그리고 이미 예수님께서 여러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예고하셨다면, 이 빵과 잔을 들면서 그들을 위해 드리는 몽이며 그들을 위해 피를 언급하셨을 때,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제자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죽음을 앞두고 가진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자 마자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눅 22:24) 여러번에 걸친 섬김에 관한 교훈도, 그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실문적인 교육도, 심지어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사실에 대한 예고에도 그들의 주 관심은 누가 더 큰 사람으로 여겨질 것인 가에 있었습니다.
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 드는 사람이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나는 시중드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도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고 지금도 계속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자리에서도 섬김에 대해서 이토록 강조하신 것은 그만큼 섬김이 중요한 문제요 그 반면 섬김을 받으려는 우리 자신의 본성과 세상의 영향력이 그토록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경우 교회도 예수님의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따르기 보다 오히려 세상의 모습을 따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섬기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혹시 내 심정 속에 상대방을 섬기려는 마음보다는 그를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는 않습니까? 대접받지 못한 것으로 원통해 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내가 자신 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겨야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령님은 섬기시는 삶을 사셨던 예수님을 닮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빌 2::5; 갈 5:22-23).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댓글목록 Reply List
이아브라함님의 댓글
이아브라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제자들이 아직은 예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듯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제자들의 생각은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전혀 채널이 맞지 않는 대화, 행동,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이 아직은 육적이고 세상에 속해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충만함을 입은 후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새로운 비전이 생겼습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이던 생각에서 영적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으로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를 산제사로 드립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최고의 덕목이며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백재종님의 댓글
백재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Date
무엇이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의 안위와 형통, 명예와 부를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려는 것이 아닌니 고백합니다.
난 아직도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내 것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주님의 생각은...
하나님을 위한 하루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