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러운 선악과 (창세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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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on Ki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8-26 18:34 조회 Read1,407회 댓글 Reply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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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선악과를 먹은 하와(여자)는 죽지 않고 살아 아담(남자)에게 주어 먹게합니다. 아담이 볼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먹은 하와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아담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선악과를 먹지 않았는데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똑똑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와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아담은 그냥 멍청한 채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자신도 냉큼 선악과를 따먹고 하와처럼 똑똑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담도 똑똑해진 것 같았습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벌거벗고 원숭이처럼 뛰놀던 아담과 하와, 그렇지만 이제는 선악을 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무슨 명문대를 졸업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한입에.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무슨 명문대를 나왔다고 선악을 잘 구별하는 것도 아니며, 또 선악을 구별한다고 해서 선을 잘 선택하고 악을 잘 다스리는 것은 아닌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분별하는) 지식과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생명(영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것이지 선악과를 따먹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싯적 도덕 시험 100점 맞았다고 다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도덕 시험 문제를 낸 선생님들조차도 도덕을 지키지 않았으니, 공자나 부처님 수준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선악과를 감히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들 기준대로(지식, 경험, 생각, 느낌대로) 선악을 정의하고 판단하고 치리하기 시작했으니 가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왜 그렇게 생겼냐, 그런 행동을 하냐, 그것 하나 못하냐 하면서 좋네 나쁘네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 물든 세상인 것이지요.
선악과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선이 있으니 악이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으니 그 생명에 필요하고 합당한 선악이 있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방법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시험 답안지를 빼돌려 다 외운 뒤 시험 치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선악과 나무는 그 열매를 따 먹으라고 심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탐스럽게 생겼다고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 먹지 말라고 눈에 잘 띄게 만든 것입니다. 마치 독버섯처럼 말입니다. 그것도 바로 생명나무 옆에다 두어 대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는 사람들에게 죄짓게 유혹하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기 전 보고 멈추라고 만드신 것입니다. 마치 길거리 스톱 사인이 크고 붉고 눈에 잘 띄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보고 멈추라는 스톱 사인을 먹는 것인 줄 알고 한입에 삼켜 버렸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스톱 사인을 먹었다고 스톱을 잘합니까?
선악과를 먹은 하와(여자)는 죽지 않고 살아 아담(남자)에게 주어 먹게합니다. 아담이 볼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먹은 하와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아담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선악과를 먹지 않았는데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똑똑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와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아담은 그냥 멍청한 채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자신도 냉큼 선악과를 따먹고 하와처럼 똑똑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담도 똑똑해진 것 같았습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벌거벗고 원숭이처럼 뛰놀던 아담과 하와, 그렇지만 이제는 선악을 아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무슨 명문대를 졸업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단번에 한입에.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무슨 명문대를 나왔다고 선악을 잘 구별하는 것도 아니며, 또 선악을 구별한다고 해서 선을 잘 선택하고 악을 잘 다스리는 것은 아닌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분별하는) 지식과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생명(영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것이지 선악과를 따먹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소싯적 도덕 시험 100점 맞았다고 다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도덕 시험 문제를 낸 선생님들조차도 도덕을 지키지 않았으니, 공자나 부처님 수준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선악과를 감히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들 기준대로(지식, 경험, 생각, 느낌대로) 선악을 정의하고 판단하고 치리하기 시작했으니 가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왜 그렇게 생겼냐, 그런 행동을 하냐, 그것 하나 못하냐 하면서 좋네 나쁘네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 물든 세상인 것이지요.
선악과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선이 있으니 악이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으니 그 생명에 필요하고 합당한 선악이 있는 것입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방법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시험 답안지를 빼돌려 다 외운 뒤 시험 치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선악과 나무는 그 열매를 따 먹으라고 심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탐스럽게 생겼다고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 먹지 말라고 눈에 잘 띄게 만든 것입니다. 마치 독버섯처럼 말입니다. 그것도 바로 생명나무 옆에다 두어 대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는 사람들에게 죄짓게 유혹하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기 전 보고 멈추라고 만드신 것입니다. 마치 길거리 스톱 사인이 크고 붉고 눈에 잘 띄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보고 멈추라는 스톱 사인을 먹는 것인 줄 알고 한입에 삼켜 버렸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스톱 사인을 먹었다고 스톱을 잘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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